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강화도로 피신하려 하였으나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대신들의 의견 또한 첨예하게 맞선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그 사이에서 ‘인조’(박해일)의 번민은 깊어지고,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데...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
남한산성
장르 : 역사, 전쟁, 드라마
감독/각본 : 황동혁 (오징어 게임)
원작 : 김훈<남한산성>
출연진 : 김윤석, 이병헌, 박해일, 고수, 박희순 외
러닝타임 : 139분
음악 : Ryuichi Sakamoto
남한산성에 피난하게 된 조선의 왕과 신하들, 청의 군대에 포위된 상황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치욕을 당하더라도 청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은 청에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전쟁의 역삿적 배경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을 침공한 후금이 1627년 정묘호란을 일으키고, 1636년 또다시 전쟁을 일으킨게 병자호란입니다.
<정묘호란>
인조반정 후 조선은 명나라와 가깝게 지내고 후금과는 거리를 두는 ‘친명 배금’의 입장을 취했다. 조선의 이러한 정책은 명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후금에게는 걱정거리였다. 명과 전쟁을 하는 사이 조선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때마침 인조반정 이후 일어난 이괄의 난이 실패로 돌아가자, 난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후금으로 탈출해 광해군이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후금은 이를 구실로 조선에 쳐들어왔다. 후금의 침략을 받은 조선 조정 안에서는 강화(싸움을 멈추고 평화적인 관계를 맺음)를 하자는 주장과 끝까지 싸우자는 주장이 엇갈렸다. 그러던 중 명과 전쟁에 신경을 쓰고 있던 후금이 강화를 요청하자 조선은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조선은 후금의 사신과 벌인 강화 협상에서 두 나라가 ‘형제 관계’를 맺을 것을 약속했다. 단, 조선과 명은 오랫동안 가까운 사이였으므로 조선이 명을 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양해를 받았다. 또한 두 나라 사이의 경계는 압록강으로 삼기로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묘호란 - 후금이 광해군 폐위 문제를 구실로 조선에 쳐들어와 벌인 전쟁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2015. 2. 10., 김한종, 이성호, 문여경, 송인영, 이희근, 최혜경, 이승수)
<병자호란>
1632년 후금은 만주 전역을 석권하고 명나라 북경을 공격하면서, 친명정책을 취하는 조선을 견제하게 되었고 배후의 안정을 위해 조선을 굴복시킬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후금은 양국관계를 형제지국의 대등한 관계에서 군신지의(君臣之義)로 고칠 것과 황금·백금 1만 냥, 전마(戰馬) 3,000필 등 세폐(歲幣)와 정병(精兵) 3만을 요구하였다. 1636년 2월 용골대(龍骨大)·마부태(馬夫太) 등을 보내어 조선의 신사(臣事)를 강요하였으나, 인조는 후금사신의 접견마저 거절하고 8도에 선전유문(宣戰諭文)을 내려, 후금과 결전(決戰)할 의사를 굳혔다. 1636년 4월 후금의 홍타이지는 스스로 황제로 칭하고 국호를 청(淸)이라고 고쳤으며, 조선이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왕자·대신·척화론자(斥和論者)를 인질로 보내 사죄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주화론자(主和論者)보다는 척화론자가 강하여 청나라의 요구를 계속 묵살하자 홍타이지는 이런 조선의 도전적 태도에 분개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병자호란 [丙子胡亂]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남한산성으로 피난간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
청나라에 항복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화해하자는 주화파(최명길)와 적과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김상헌)의 대립이 영화의 주를 이루며
남한산성 영화의 스토리는 흘러갑니다.
처음에는 김상헌의 척화파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임금, 하지만 청의 칸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격이 임박한 상황을 보고 살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며 최명길의 주화파의 의견을 따릅니다.
이렇게 남한산성에서 왕과 신하들간의 항복을 놓고 의견을 다투는 동안 성안밖의 백성들과 군사들은 배고픔과 추위, 죽음에 내몰리게 됩니다. 백성이 나라의 중심이 아닌 그들만의 세상을 지키기 위한 것이죠.
"나는 살고자 한다. 그 것이 나의 뜻이다." 인조는 초반에 세자를 볼모로 내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항복을 반대했지만 결국 살고자 합니다.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이옵니다."
항복을 거부하는 예조판서 김상헌 대감.
칸에게 답신을 보내 항복을 하자는 임금과 주화파.
"정녕 명길이 말하는 것이 전하가 살아서 걸어가시고자 하는 길이옵니까.
명길이 말하는 삶은 곧 죽음이옵니다.
신은 차라리 가벼운 죽음으로 죽음보다 더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한나라의 국왕이 오랑캐에 맞서 떳떳한 죽음을 맞을지언정 어찌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하시옵니까
저는 차마 그런 임근을 받들지도, 지켜볼 수도 없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신의 목을 베소서."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상헌이 말하는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것이옵니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만백성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무엇이 임금이옵니까. 오랑캐의 발 밑을 기어서라도 제 나라의 백성이 살아서 걸어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서
신하와 백성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임금이옵니다.
부디 전하께선 이 치욕을 견뎌주소서."
47일만에 끝난 전쟁,
세상은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갑니다.
백성은 그들의 일상을 되찾아가고, 죽은 이를 추모하고 다시 나라에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오징어게임'으로 유명한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
남한산성이라는 공간에서의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조선을 침략한 외세를 두고 전쟁을 하느냐, 항복하느냐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이
두 대신의 명 대사로 보여집니다.
결국은 조선의 왕이 청의 황제에게 항복을 하게됩니다.
삼전도(현재의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전동 및 석촌동 부근에 있던 하중도의 나루터)에서
삼궤구고두례(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법)를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장수 용골대 등이 인도하여 들어가 단(壇) 아래에 북쪽을 향해 자리를 마련하고 상에게 자리로 나가기를 청하였는데, 청나라 사람을 시켜 여창(臚唱 : 의식 순서를 소리내어 읽는 것)하게 하였다. 상이 삼궤구고두의 예를 행하였다.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30일 경오 2번째 기사
삼전도의 굴욕을 계기로 조선은 청나라와 조공책봉관계를 맺게되어 심양으로 방물과 세폐를 조공하고 청 황제의 책봉을 받아야 했다. 이는 명나라와의 관계를 단절당한 것으로, 외교권을 제한당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세 정승(의정부)과 여섯 판서(6조)의 질자들이 잡혀가고, 삼학사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처형되었다.
2024.02.17 - [시선] - 극적인 생존실화를 다룬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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